- 카테고리: 문화·영화 비평 / 일상 에세이
📺 1. 영화관의 추억은 2019년에 멈추고, 넷플릭스 유목민이 되다
요즘은 넷플릭스가 새로운 콘텐츠를 올려주지 않으면 도무지 새로운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시국입니다. 다른 OTT 채널을 구독하고 있지도 않은 데다, 이제는 나이 탓인지 스마트폰으로 불법 다운로드를 받아 가며 작은 화면을 들여다볼 신체적 여유도, 의욕도 없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몇 년간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은 이러한 고립을 더욱 공고히 만들었습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니,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에 보았던 영화 <조커(Joker)>가 제 인생의 마지막 영화관 관람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이후로 제 미디어 생활은 온전히 거실의 넷플릭스 화면 속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2. 한국을 떠난 지 10년, 모국어가 낯설어지는 슬픈 순간 <나쁜 녀석들>
해외에 터를 잡은 지 어느덧 10년 차,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국 땅을 밟지 못한 지도 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갑니다. 원래대로라면 작년에 한국에 들어가 만료된 카드도 갱신하고, 미뤄둔 은행·보험·금융 업무를 보며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오랜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날 야심 찬 계획을 세웠으나,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이 모양이다 보니 결국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평소에는 한국 영화를 보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사무쳐서 일부러 멀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이번 설 연휴에는 부담 없는 오락 영화이기도 하고, 포스터에 다 아는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 <나쁜 녀석들>을 틀었습니다. (강동원을 닮은 젊은 배우 한 명을 빼고는 전부 낯익은 베테랑들이더군요.)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예상치 못한 기묘한 이질감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① 귀의 '패턴 인식' 오류: 모국어 대사가 안 들린다
소리를 꽤 크게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초반에는 배우들이 하는 한국어 대사가 마치 영어 처럼 웅얼웅얼 들리며 단번에 뇌리에 꽂히지 않았습니다. 귀라는 기관도 일종의 패턴 인식을 하는 모양입니다. 평소 팟캐스트를 듣고 현지의 몇 안 되는 지인들이나 동료 사장들과 간간이 통화하며 듣는 언어 체계와, 한국 영화 속 정형화된 배우들의 대사 체계를 받아들이는 데까지 뇌가 적응하는 시간만 꼬박 30분이 걸렸습니다.
② 맥락 없는 카메오와 트레이드마크의 피로감
한국 문화권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보니 감독이 '이 정도는 관객들이 다 알겠지' 하고 깔고 가는 유머나 장치들이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특정 배우가 등장 씬에서 왜 저렇게 의미심장하게 씩 웃고 들어오는지, 저게 저 배우의 유명한 트레이드마크인가 추리하다 보니 영화적 감흥이 팍 떨어지더군요.
개인적으로 대단히 좋아했던 배우 김아중 씨의 연출도 아쉬웠습니다. 일상에서 비율이 좋은 일반인들을 워낙 많이 봐서 그런지, 영화 속에서 "이 몸매 끝내주지?" 하고 노골적으로 잡아낸 듯한 앵글과 영상미는 감탄보다는 오히려 "왜 저렇게까지?" 하는 의아한 반응만 자아냈습니다. 모국어의 장벽과 문화적 단절을 동시에 느끼며 가슴 한구석이 씁쓸하고 서글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3. 대배우의 연기력 낭비, 아쉬운 서사의 마침표 <뉴스 오브 더 월드>
한국 영화에서 느낀 서글픔을 달래고자, 이번에는 언제나 믿고 보는 큰형님 톰 행크스 주연의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를 골라잡았습니다.
영화 중반부까지는 18세기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철저한 고증과 분장, 그리고 그 시절 특유의 차가운 거친 황야를 담아낸 촬영 현상 기술에 엄청난 공을 들였구나 싶어 "참 애썼네" 하며 몰입해서 보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결말부였습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드디어 고향 집에 돌아온 주인공. 그러나 아내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는 아내의 반지를 돌려주며 과거를 정리합니다. 그리고 친부모는 물론 자신을 길러준 인디언 부모들까지 모두 살해당하는 천박한 비극을 겪은 외로운 소녀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길을 떠나죠.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미국 전역을 돌며 사람들에게 신문을 읽어주는 일을 그 소녀와 함께 신나게 쿵짝을 맞춰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엉성하게 마무리가 됩니다. 그 묵직했던 서사의 끝이 고작 신문 읽어주는 만담 콤비의 탄생이라니, 결말의 깊이와 의미를 도무지 찾지 못해 나참 기가 막히더군요. 톰 행크스라는 대배우의 명품 연기력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 건가 싶어 진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 4. 집밥의 서글픈 배신, 그래도 기분 좋은 명절의 여운
이렇게 약간은 이상하고 허접때기 같은 영화 평들을 남기며 저의 설날 연휴는 막을 내렸습니다. 평소에는 계란과 시리얼로 대충 때우는 아침 식사를 제외하고는 일상의 99%를 식당 음식으로 해결하곤 했는데요.
이번 연휴 며칠 동안 점심, 저녁을 온전히 집에서 챙겨 먹다 보니 문제가 터졌습니다. 평소에 먹지 않던 익숙지 않은 가정식(?) 음식을 연달아 먹어서 그런지 위와 장이 탈이 나 버린 것입니다. 어제는 거의 강제로 관장을 당한 수준으로 화장실을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하며 호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이미지 추천 3] 설날 연휴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먹은 따뜻한 밥상 풍경 사진
비록 영화 선택은 조금 아쉬웠고 장 트러블로 몸은 고생했을지언정, 오랜만에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족, 친지들과 함께 온전한 설날을 보낼 수 있어서 마음만큼은 므흣하고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타향에 살며 몸은 멀어져 있어도, 명절이 주는 특유의 온기는 여전히 가슴속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블로그 이웃 여러분도 이번 설날 연휴 모두 무사히, 그리고 따뜻하게 잘 지내셨기를 바라며 방구석 관람기를 마칩니다. 여러분은 이번 연휴에 어떤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나요? 댓글로 추천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