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10월 26일, 제13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또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인물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2021년 11월 23일 오전 8시 40분,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을 앓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향년 90세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다시금 던지게 만듭니다.
🎬 1. 영화 <26년>과 끝나지 않은 역사적 단죄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는 이름 석 자는 우리 세대에게 영화와 뉴스를 통해 '세상은 그리 공평하거나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씁쓸한 교훈을 각인시킨 장본인입니다.
그 감정을 가장 잘 건드렸던 작품이 바로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2012년 작 영화 <26년>입니다. (IMDb 평점 6.3점)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으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 자녀들이 모여 '그 사람'을 단죄하려는 복수극을 그린 이 영화를 보며, 많은 관객이 주먹을 쥐었습니다. 극 중에서라도 그가 총을 맞거나 구타를 당할 때 "더 당해라"라며 마음속으로 외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수많은 무고한 시민의 머리를 바스라뜨리던 곤봉의 잔혹함을 목격했기에 , 죽는 순간까지 뻣뻣하고 당당하게 살아간 그의 모습 앞에서 "정의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 2.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애와 굴곡진 기록
그는 군인으로서 정점의 권력을 쥐었으나, 퇴임 후 사법적 단죄와 사면으로 점철된 굴곡진 생애를 살았습니다.
- 출생과 군 경력: 1931년 경남 합천 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게릴라 전술과 심리전 전문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후 사조직 '하나회'를 결성하며 군부 내 핵심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 철권통치와 유혈 진압: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를 통해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로 부상했으며 ,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유혈 진압을 명령하여 수백 명의 죄 없는 시위대를 숨지게 했습니다. 이후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제11대 및 12대 대통령을 역임했습니다.
- 체포와 사면: 퇴임 후인 1995년, 재임 중 기업인들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은 혐의와 군사 반란 및 내란죄 혐의로 노태우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전 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종신형으로 감형되었고 , 결국 1997년 12월 대통령 사면을 받아 석방되었습니다.

⚖️ 3.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과 미완의 사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단 한 마디의 사과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몇 년 전에는 5.18 당시 군부 헬기가 시위대를 향해 사격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2020년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 사망 직전까지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였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후보의 과거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라는 발언이 다시금 구설수에 올랐으며 , 청와대는 국가장을 치르지 않고 빈소에 근조화환조차 보내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며 역사의 엄중한 평가를 대신했습니다.
🪂 4. 에필로그: '90도 레펠'이 남긴 철저한 자기 확신의 잔상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이지만, 평범한 인간의 관점에서 한 가지 경이로운 점은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한 일을 옳다고 믿는 철저한 자기 확신과 고집'입니다. 일반적인 멘탈을 가진 사람이라면 죄책감과 사회적 지탄 속에서 1~2년도 버티기 힘들었을 텐데, 그는 평생을 뻣뻣하게 버텨냈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 지금은 작고하신 제 부친께서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하셨던 말씀이 기억을 스칩니다.
"저 사람이 헬기나 벽에서 레펠(Rappel)을 할 때 몸을 완벽하게 90도로 유지하며 내려오는 것을 보면, 진짜 지독한 군인이 맞는 것 같다."
평생 육식을 즐기고 혹독한 군인 생활로 몸을 단련했던 전두환이었기에 , 그 나이에도 엄청난 복근과 근력으로 90도 자세를 유지했을 것입니다. 신체적인 근력만큼이나 그의 정신적 고집과 독선 역시 대단한 수준이었음을 방증하는 일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그에 대한 비난이나 옹호를 넘어, 그가 남긴 미완의 숙제와 비극적인 역사는 이제 온전히 남겨진 자들과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법정이 냉정하게 평가할 몫으로 남게 되었습니다.